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정보

지증왕 법흥왕 업적 요약 정리

by 자격증마스터연우 2023. 12. 7.
반응형
지증왕 법흥왕 업적 요약정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시간에는 신라 시대의 지증왕과 법흥왕이 당시에 남긴 업적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는데요. 초기의 신라는 지리적인 요건으로 발전이 느렸다는 특징이 있었지만, 지증왕 때부터 급격하게 성장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들이 모여 삼국을 통일하는데,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신라의 지증왕 업적, 법흥왕 업적에 대해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증왕 업적 법흥왕 업적 이미지

지증왕 업적 _ 6C 초반

먼저 지증왕은 국가의 국호를 신라로 전하게 되었고, 왕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변경하게 되는데요. 즉 이때부터 왕이라는 부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부 장군에게 명령하여 우산국(울릉도, 독도) 일대를 정벌하게 시켰습니다.

 

게다가 지방제도를 정비한 업적을 남겼는데, 이때 전국을 주, 군, 현으로 구분하고 관리를 파견함으로써, 지방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유물 이미지

 

또한 지증왕은 당시 풍습이었던 순장을 금지시켰으며, 생산력 증대를 위해 우경을 장려했는데요. 우경은 소를 이용한 밭을 가는 것이며, 이를 통해 많은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지증왕은 농업의 생산력을 증대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신라의 수도의 동시(시장)를 열고 이를 관리하는 동시전을 설치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계단 이미지

법흥왕 업적 _ 6C 전반 중앙 집권 체제 강화

다음으로 법흥왕 업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불교를 수용했다는 점인데요. 이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527년 공인되었으며, 이를 통해 신라인의 사상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법흥왕은 금관가야를 532년에 병합하여, 낙동강 하류 지역까지 차지하게 되면서 많은 영토를 확장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신라 경주에 있는 탑 이미지

 

또한 법흥왕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때 건원이라는 연호를 정했고, 이를 사용했다는 것은 중국과 대등한 나라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흥왕은 병부를 설치하여 직접 군사를 지휘권을 장악했는데요.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법흥왕은 관등제를 정비하여 관리의 등급을 17 관등으로 구분하여 관복을 제정했으며, 상대등을 설치하여 귀족 회의를 진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골품제를 정비하여 지배층의 신분제를 강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건축 이미지

지증왕 업적 법흥왕 업적 _ 글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지증왕 업적, 법흥왕 업적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 봤습니다. 신라의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국의 역사인 신라를 공부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번 포스팅을 통해 핵심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